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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벼랑 위에 서 있는 여인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멋대로 죽이고 천하를 횡행하던 문제의 인물

무영객이, 소세옥의 손에 복면을 하고 있던 검정 헝겊이 벗겨졌을 때, 자운 아가씨는 무영객이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슬픈 심정과 실망과 괴로움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다.광

장 한복판이 온통 난장판이 되고, 뺑소니치는 사람,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로 한창 분란을 피우고 있

을 때였다.쨍!하는 매서운 쇳소리와 함께 자운 아가씨는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새파

란 검광이 무지개처럼 뻗쳐 나는 긴 칼로 자기 목을 자기 손으로 베어 자살해 버리려고 했다.그

, 어수선한 사람들 틈에서 누군지 불호를 외는 소리가 들려 왔다.”나무 아미타불!”칼을 잡고 있는

자운 아가씨의 손목이 별안간 시큰시큰해지고 힘이 없어짐을 깨달았다.쨍그렁!자운 아가씨는 장

검을 땅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바로 이때, 한 줄기 사람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그것

은 바로 자운 아가씨의 모친 수라수(修羅手) 담경영(譯瓊英)이었다.담경영은 장탄식을 금치 못

했다.”자운아! 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냐?”말을 마치자 담경영은 나무로 깎아서 만들어 세운

사람같이 넋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 딸을 부둥켜 안았다. 또 한편에서는 기절을 하다시피 나자

빠진 사마림 아가씨를 부둥켜 안고 세심신니와 함께 두 여자들은 극도의 분란 속에 빠진 광장에서

뛰쳐 나왔던 것이다.자운 아가씨는 너무나 중대한 정신적 타격을 받았다.절망과 분노와 저주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엉클어진 심정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며, 온종일 헛소리를 하고, 침상

에 눕혀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자기 몸을 어떻게 할지 몰라 미친 사람같이 날뛰었다.자운 아가씨의

모친과 세심신니는 백방으로 달래고 구슬리고 온갖 방법을 다해 봤지만, 자운 아가씨의 정신 상태

는 사흘이 지나도록 호전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예봉 사마림 아가씨는 병세가 쉽사리 호전되

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는 못했다.세심지(洗心池) 못 가에 서 있던 자운 아가씨는

돌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가엾게 초췌해진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고 있었

다. 미친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게 중얼중얼했다.”보슬비 내리던 그때 그날을 잊기 어려워, 가 버린

사람이 남기고 간 안타까운 사람의 추억 때문에‥‥‥‥”애절하고 처량한 음성은 듣는 사람의 창

자를 끊어 놓을 것만 같았다. 줄에 꿰었던 구슬알이 푸르르 끊어져 버리듯, 눈물 방울이 쉴 새없이

땅 위에 떨어졌다.세심신니와 사마림 아가씨는 자운 아가씨의 신변 가까이 걸어왔다.